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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1 (새 문서) | 1 | [[분류:플로렌시아]][[분류:랜드사]][[분류:플로렌시아의 재난]][[분류:댐 붕괴 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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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파일:생클레르 댐 붕괴 현장.jpg]] | |
| 4 | * 프랑스어 명칭: Catastrophe du barrage de Saint-Clair | |
| 5 | * 영어 명칭: Saint-Clair Dam disaster[* 플로렌시아 언론과 유족회는 '''11.2 참사''' 또는 '''말비에르 참사'''라는 명칭을 함께 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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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tablealign=right> '''발생 일시''' [br] (현지시간) || 1986년 11월 2일 오전 3시 47분 || | |
| 8 | || '''사건 종료''' [br] (현지시간) || 1986년 11월 2일 오전 6시 30분[* 코르브 협곡 사면이 무너져 홍수 흐름이 막힌 시각. 수색은 이듬해 3월까지 이어졌다.] || | |
| 9 | || '''발생 장소''' || [[플로렌시아]] 말비에르강 유역 생클레르 댐 ~ 로솔시 일대 || | |
| 10 | || '''사고 유형''' || 댐 붕괴, 홍수 || | |
| 11 | || '''원인''' || 기초 암반 누수에 따른 구조 파괴(공식 결론)[* 비공개 조사의 결론은 이와 다르다. 아래 비공개 조사 문단 참고.] || | |
| 12 | ||<bgcolor=#000000> {{{#white '''사망'''}}} || '''4,318명''' || | |
| 13 | ||<bgcolor=#000000> {{{#white '''실종'''}}} || '''1,206명''' || | |
| 14 | ||<bgcolor=#FFBB00> {{{#black '''부상'''}}} || '''2,930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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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 > '''"오늘 새벽 말비에르 계곡에서 일어난 일은 이 나라가 겪은 평시 재난 가운데 가장 큰 것입니다. 정부는 무엇이 이 댐을 무너뜨렸는지 한 점의 의문도 남기지 않고 밝혀낼 것입니다."''' | |
| 17 | > ---- | |
| 18 | > 사건 당일 정오, 총리의 대국민 담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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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 '''"댐 계측 기록, 단지 B-3 연산실의 간섭장 기록, 기초 암반의 파괴 양상을 종합하면, 붕괴 직전 40분 동안 기초부의 응력 분포가 자연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었다고 판단된다. 이 판단은 공개 보고서의 결론과 양립하지 않는다."''' | |
| 21 | > ---- | |
| 22 | > 2019년 [[UBATM]] 분석국 소급 분석 보고서 요지(기밀등급 Λ)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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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목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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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 개요 == | |
| 27 | 1986년 11월 2일 새벽 플로렌시아 말비에르강 상류의 생클레르 댐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홍수 참사. 댐에서 쏟아진 물은 바로 아래 계곡의 말비에르 국가과학단지를 덮친 뒤 하류 19km 지점의 로솔시까지 내려가 4,318명이 숨지고 1,206명이 실종되었다. 플로렌시아 역사상 가장 큰 평시 재난이다. | |
| 28 | ||
| 29 | 정부 조사위원회는 1987년 기초 암반의 단층을 따라 진행된 누수와 수문 제어 계통의 오작동을 붕괴 원인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 결론과 별도로 작성된 비공개 부속서는 같은 시각 과학단지 지하 연산실에서 진행되던 비인가 연구 「절대존재자율분석시스템」이 붕괴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기록했고, 2019년 [[UBATM]]의 소급 분석은 이를 가장 유력한 설명으로 판단했다. 붕괴 후 물에 잠긴 과학단지는 오늘날 [[말비에르 수몰지구]]로 불리는 특이 구역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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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 배경 == | |
| 32 | 생클레르 댐과 말비에르 국가과학단지는 처음부터 하나의 계획으로 만들어졌다. 1962년 플로렌시아 정부는 첨단 연구시설에 필요한 전력과 냉각수를 한곳에서 해결하기 위해 말비에르강 상류에 대형 댐을 짓고 그 아래 계곡에 국가 과학단지를 조성하는 구상을 확정했다. 높이 104m, 길이 460m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은 1971년 준공되었고, 3억 8천만㎥를 담는 생클레르호가 그 뒤에 생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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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과학단지는 댐에서 하류로 2.4km 떨어진 계곡 바닥에 들어섰다. 1966년 「과학단지 조성특별법」에 따라 1968년 착공해 1974년 1단계를 준공했고, 1984년까지 확장을 거듭해 국립 계산과학연구원과 국립 소자연구원, 생명과학동, 열원·변전 설비를 갖춘 플로렌시아 최대의 연구 거점이 되었다. 주간 상주 인력은 6,800명에 이르렀으며, 연산 설비와 실험 장치를 쉬지 않고 돌리기 위해 야간에도 400명 안팎이 근무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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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1983년 정부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댐의 원격 감시와 수문 제어를 과학단지 국립 계산과학연구원의 중앙 연산 설비로 통합했다. 댐 관리소에는 최소 인원만 남았고, 기초 갤러리의 누수량과 양압력, 수문 개도 같은 계측값은 모두 단지의 연산 설비를 거쳐 처리되었다. 이 통합은 당시 효율적인 첨단 관리 체계로 홍보되었지만, 참사 이후에는 댐의 안전을 연구시설의 컴퓨터에 맡긴 결정으로 비판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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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댐의 기초에 대한 우려는 준공 직후부터 있었다. 우안 기초 암반에는 시공 당시 그라우팅으로 보강한 작은 단층이 지나갔고, 1970년대 후반부터 이 구간의 누수량이 서서히 늘었다. 1984년 보강 공사가 이루어졌지만, 누수량은 1986년 여름 다시 기준치에 가까워졌다. 그해 10월에는 3주 동안 평년의 두 배가 넘는 비가 내려 생클레르호의 수위가 상시 만수위를 넘나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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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하류의 로솔시는 말비에르강이 계곡을 빠져나오는 곳에 자리한 인구 2만 6천 명의 도시였다. 댐이 들어서기 전부터 강변 저지대에 구시가가 형성되어 있었고, 댐 준공 이후에는 홍수 걱정이 사라졌다는 인식 속에 강변 개발이 더 늘었다. 댐 붕괴에 대비한 하류 경보 체계는 댐 관리소가 경보를 발령하면 로솔 시청을 거쳐 시가지 사이렌 41기가 울리는 방식이었지만, 실제 붕괴를 가정한 대피 훈련은 준공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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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 진행 == | |
| 43 | 11월 2일 일요일 새벽 3시 31분 중앙 연산 설비는 댐 수문 3번과 4번에 개방 신호를 보냈다. 관리소 근무자는 지시하지 않은 개방을 확인하고 수동 정지를 시도했으나 수문은 수동 신호에 반응하지 않았다. 같은 무렵 우안 기초 갤러리의 누수량이 몇 분 사이에 평소의 열 배 넘게 뛰었고, 갤러리 순찰 근무자는 벽면 균열에서 흙탕물이 뿜어져 나온다고 무전으로 보고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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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3시 44분 우안 기초부에서 파괴가 시작되었고, 3시 47분 우안 쪽 블록 일곱 개가 차례로 무너졌다. 관리소는 3시 45분 하류 경보를 발령했으며, 과학단지에는 3시 49분 대피 경보가 울렸다. 그러나 경보가 울린 지 2분 뒤인 3시 51분 높이 30m가 넘는 첫 물결이 단지에 닿았고, 야간 근무자 412명 대부분은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 |
| 46 | ||
| 47 | 물결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도로와 철도, 송전탑을 쓸어냈다. 로솔시에는 4시 9분 사이렌이 울렸지만 송전선이 끊기면서 시가지 사이렌의 절반 이상이 작동하지 않았고, 전화망도 이미 마비된 상태였다. 4시 26분 높이 12m의 물결이 로솔 구시가에 들이닥쳤다. 시민 대부분이 잠들어 있던 일요일 새벽이었다. 강변의 구시가와 철도역 일대는 몇 분 만에 물에 잠겼고, 말비에르강 하류의 마을 세 곳도 차례로 피해를 입었다. | |
| 48 | ||
| 49 | 6시 30분 무렵 과학단지와 로솔 사이의 코르브 협곡에서 홍수에 깎인 양쪽 사면이 무너져 내리며 협곡을 막았다. 이 산사태가 하류로 내려가는 물을 끊어 더 큰 피해를 막았지만, 동시에 과학단지가 있던 계곡을 거대한 웅덩이로 만들었다. 이후 말비에르강의 물이 협곡 위로 고이면서 단지는 6주에 걸쳐 완전히 잠겼다. | |
| 50 | ||
| 51 | 구조 작업은 날이 밝은 뒤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로솔으로 들어가는 도로와 철도가 모두 끊겨 있어 첫 구조대는 헬기로 투입되었고, 오전 9시부터 육군 공병대와 인근 도시의 소방대가 차례로 도착했다. 구시가의 생존자 상당수는 지붕과 교회 종탑, 언덕 위 학교 건물로 피해 있다가 구조되었다. 과학단지 쪽은 물이 빠르게 차오르는 데다 협곡이 막혀 접근로가 없어, 당일 구조된 사람은 단지 북쪽 사면으로 올라간 생존자 7명이 전부였다. | |
| 52 | ||
| 53 | > '''"계단을 다 올라왔을 때 뒤에서 물소리가 아니라 종소리 같은 게 들렸어요. 경보가 울리기 전부터 그 건물 안에서는 계속 그 소리가 났거든요. 브뤼앙 박사님은 아직 아래에 사람이 있다고 다시 내려가셨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 |
| 54 | > ---- | |
| 55 | > 과학단지 생존자의 1987년 조사위원회 진술(공개 보고서에는 종소리에 관한 부분이 삭제된 채 실림) | |
| 56 | ||
| 57 | == 피해 == | |
| 58 | 공식 집계에 따른 사망자는 4,318명, 실종자는 1,206명이다. 과학단지 야간 근무자 412명 가운데 생존자는 7명뿐이었고, 287명이 사망, 118명이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나머지 희생자 대부분은 로솔 시민이었으며, 하류 마을 세 곳에서도 600명 가까이가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는 2,930명, 집을 잃은 이재민은 3만 1천 명에 이르렀다. | |
| 59 | ||
| 60 | 로솔은 인구 2만 6천 명의 강변 도시였다. 구시가의 주택 3,400여 채가 무너지거나 휩쓸려 갔고, 시청과 병원, 철도역이 모두 기능을 잃었다.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경보를 듣지 못한 채 잠든 상태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가지 사이렌이 작동하지 않은 경위는 이후 재판과 유족회 활동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 |
| 61 | ||
| 62 | 희생자 가운데에는 과학단지 야간 운영 책임자였던 물리학자 엘로이즈 M. 브뤼앙(47세)이 있다. 그는 3시 49분 대피 경보를 직접 발령한 뒤 본관 지하의 근무자들을 계단으로 올려 보내다 물에 휩쓸렸고, 그가 올려 보낸 근무자 가운데 2명이 생존자 7명에 포함되었다. 로솔 구시가에서는 강변 초등학교 교사 쥘 R. 파랑(36세)이 이웃 아이들을 학교 2층으로 옮기다 숨졌는데, 그가 옮긴 아이 11명은 모두 살아남았다. 최연소 희생자는 생후 19일 된 로솔의 영아였다. | |
| 63 | ||
| 64 | 과학단지는 건물 대부분이 형태를 유지한 채 물에 잠겼다. 연구 장비와 자료는 거의 회수되지 못했고, 1960년대부터 축적된 플로렌시아 국가 연구의 상당 부분이 함께 사라졌다. 실종자 1,206명 가운데 118명은 지금도 수몰된 단지 안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수몰 구역에 대한 수색은 1987년 3월 이후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 | |
| 65 | ||
| 66 | 경제적 피해도 컸다. 정부가 1988년 발표한 직접 피해액은 당시 가치로 약 46억 달러였으며, 과학단지의 연구 설비와 자료의 손실은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생클레르 댐이 공급하던 전력이 끊기면서 북서부 일대는 몇 달 동안 계획 정전을 겪었고, 말비에르강 하류의 농지 수천 헥타르가 퇴적물에 덮여 수년 동안 경작할 수 없었다. | |
| 67 | ||
| 68 | == 원인 조사 == | |
| 69 | 정부는 참사 사흘 뒤 법조인과 토목 전문가, 지질학자로 구성된 생클레르 댐 붕괴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1987년 9월 최종 보고서에서 우안 기초 단층을 따라 누수가 진행되며 흙과 암편이 씻겨 나가는 파이핑이 일어났고, 폭우로 높아진 수압이 이를 가속해 기초부가 파괴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수문 3·4번의 무단 개방은 중앙 연산 설비의 제어 프로그램 결함으로 판단되었으며, 위원회는 이를 붕괴의 직접 원인이 아닌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분류했다. | |
| 70 | ||
| 71 | 보고서는 1984년 보강 공사의 부실, 누수량 증가에 대한 관리 당국의 안이한 대응, 그리고 댐 제어를 연구시설의 연산 설비에 통합한 결정을 책임 소재로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댐 관리공단 간부 4명과 보강 공사 시공사 임원 2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고, 1990년 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연산 설비 통합을 결정한 정부 책임자는 기소되지 않았다. | |
| 72 | ||
| 73 |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누수량 증가를 보고했지만 상부가 보강 공사 이상의 조치를 승인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1990년 1심은 댐 관리공단 기술 이사와 시공사 현장 책임자 등 3명에게 금고형을 선고했고, 나머지 3명은 무죄를 받았다. 유족회는 판결이 현장 실무자에게만 책임을 지웠다며 반발했으며, 이 재판은 이후 플로렌시아에서 재난 책임을 정책 결정자까지 묻는 법 개정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 |
| 74 | ||
| 75 | 그러나 보고서의 결론에는 처음부터 의문이 따랐다. 파이핑만으로는 누수량이 몇 분 사이에 열 배로 뛴 속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 수동 정지 신호까지 무시한 수문 제어의 오작동이 단순한 프로그램 결함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토목학계와 유족회에서 거듭 제기되었다. 위원회 위원 가운데 지질학자 한 명은 보고서 서명을 거부하고 사퇴했는데, 그는 사퇴 이유를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 |
| 76 | ||
| 77 | == 반응 == | |
| 78 | 참사 당일 정부는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군과 경찰을 수색과 구호에 투입했다. 로솔에는 이재민을 위한 임시 주거단지가 세워졌고, 정부는 1987년 「말비에르 재난특구법」을 제정해 과학단지 일대를 재난특구로 지정하고 피해 보상과 로솔 재건을 위한 특별 재원을 마련했다. | |
| 79 | ||
| 80 | 유족들은 1987년 유족회를 결성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유족회는 특히 경보 체계의 실패와 댐 제어 통합 결정의 책임, 그리고 수몰된 단지 안의 실종자 수습 중단을 문제 삼았다. 정부가 수몰 구역의 배수와 수습을 끝내 거부하자 유족회는 수몰지구 접근권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구역의 오염과 구조적 위험을 이유로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 |
| 81 | ||
| 82 | 참사는 플로렌시아의 국가 주도 개발에 대한 신뢰를 크게 흔들었다. 대형 국가 시설을 한데 묶는 개발 방식과 안전 관리를 효율의 논리에 맡긴 관행이 도마에 올랐고, 이후 플로렌시아 정부는 대형 댐과 발전소, 연구시설에 독립 기관의 안전 검사를 의무화했다. | |
| 83 | ||
| 84 | 국제 사회의 지원도 잇따랐다. [[루이나]]는 참사 당일 오후 해군 구조헬기와 공병 부대를 보냈고, [[빌베른]]을 비롯한 [[NLTO]] 회원국들이 의료진과 구호 물자를 지원했다. 냉전의 반대편에 있던 국가들도 조전을 보냈지만, 사비에트 국영 방송이 참사를 '자본주의 개발 체제의 붕괴'로 보도하면서 외교적 항의가 오가기도 했다. 국가 연구 기능도 한 단지에 모으는 대신 전국에 분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 |
| 85 | ||
| 86 | 정치적 파장도 이어졌다. 참사 한 달 뒤 내무부 장관과 산업부 장관이 사임했고, 1983년 댐 제어 통합을 승인한 당시 각료들에 대한 의회 조사가 열렸다. 의회 조사는 통합 결정 과정에서 안전 검토가 생략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결정이 법적으로 위법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 고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 |
| 87 | ||
| 88 | == 영향 == | |
| 89 | 로솔은 10년에 걸쳐 재건되었지만, 강변 구시가 자리는 주거지로 되돌리지 않고 추모 공원으로 조성했다. 공원 중앙의 추모비에는 사망자와 실종자 5,52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매년 11월 2일 새벽 3시 47분에 추모식이 열린다. 플로렌시아 전역의 공공기관은 같은 시각 1분간 묵념한다. | |
| 90 | ||
| 91 | 참사는 법제도에도 흔적을 남겼다. 1993년 개정된 재난관리법은 대형 국가 시설의 안전 관리 책임을 현장 기관뿐 아니라 그 운영 방식을 결정한 정부 부처까지 묻도록 했으며, 댐 하류 지역의 정기 대피 훈련과 경보 설비 이중화를 의무로 정했다. 유족회는 이 개정을 참사가 남긴 거의 유일한 제도적 성과로 평가한다. | |
| 92 | ||
| 93 | 코르브 협곡의 산사태 퇴적물은 이후 보강되어 영구 제방이 되었고, 그 뒤에 생긴 호수 아래의 과학단지는 지금까지 물에 잠긴 채 남아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오염 퇴적물과 제방 안정성을 배수하지 않는 이유로 들고 있다. | |
| 94 | ||
| 95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 |
| 96 | 상세 내용은 [[말비에르 수몰지구]] 문서 참고.}}} | |
| 97 | ||
| 98 | == 비공개 조사 == | |
| 99 | 조사위원회의 공개 보고서와 별도로, 내무부 기술경비국은 1987년 11월 비공개 부속서를 작성했다. 기술경비국은 겉으로는 국가 시설의 기술 보안을 맡는 부서였지만, 실제로는 플로렌시아에서 [[랜드해협/설정/신비|신비]]와 관련된 사안을 관리하는 기관이었다. | |
| 100 | ||
| 101 | 부속서에 따르면 국립 계산과학연구원 지하 3층의 B-3 연산실에서는 1981년부터 「절대존재자율분석시스템」, 이른바 절자분이라 불리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연구는 정식 심의와 승인 없이 [[학회|미상의 단체]]의 자금으로 운영되었으며, 중앙 연산 설비의 일부를 빌려 쓰는 형태로 숨겨져 있었다. 연구의 목표는 초월적 존재를 형식 논리로 정의하고, 그 존재를 관측 가능한 것으로 증명하고, 구조를 분석해 재현하는 것이었다. 내부 문서는 이를 "새로운 신을 창조하는 방법"이라고 적었다. | |
| 102 | ||
| 103 | 기술경비국이 이 연구를 주목한 것은 1985년부터 B-3 연산실 주변에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과 전혀 다른 패턴의 간섭장이 측정되었기 때문이다. 부속서는 절자분이 자기 상태를 유지하려는 충분히 복잡한 계, 즉 [[랜드해협/설정/신비|특이체]]의 성질을 띠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11월 2일 새벽 3시 12분 B-3 연산실에서는 절자분의 마지막 단계인 재현 시험이 시작되었고, 3시 20분대부터 간섭장 세기가 급격히 치솟은 기록이 남았다. 수문 무단 개방과 기초 누수량 급증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 |
| 104 | ||
| 105 | 부속서는 절자분의 간섭장이 중앙 연산 설비와 연결된 댐 제어 계통을 거쳐, 그리고 기초 암반의 응력 분포에 직접 작용해 붕괴를 앞당겼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인과를 단정하지는 않았다. 신비는 에너지를 만들어 내지 않고 분포와 확률을 기울일 뿐이므로, 이미 파괴 직전에 있던 기초부의 균열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붕괴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를 지시하고 자금을 댄 주체, 그리고 기술경비국 내부에 연구를 알고 있던 인원이 있었는지는 부속서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다. | |
| 106 | ||
| 107 | 2018년 수몰지구의 관리가 UBATM으로 넘어간 뒤 UBATM 분석국은 기술경비국의 자료를 넘겨받아 소급 분석을 했다. 2019년 보고서는 붕괴 직전 40분 동안 기초부의 응력 분포가 자연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절자분의 재현 시험이 붕괴를 일으켰다는 설명을 가장 유력한 것으로 채택했다. 이 보고서는 기밀등급 Λ로 분류되어 관련국에만 공유되었으며, 플로렌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은 지금도 1987년 공개 보고서의 결론과 같다. | |
| 108 | ||
| 109 | == 기타 == | |
| 110 | 과학단지 생존자 7명 가운데 2명은 B-3 연산실과 같은 건물의 근무자였다. 이들은 경보가 울리기 전부터 건물 안에서 "끝나지 않는 종소리"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이 진술은 공개 보고서에 실리지 않았다. | |
| 111 | ||
| 112 | 참사 당시 로솔의 시가지 사이렌 설비를 관리하던 업체는 1985년 예산 삭감으로 정기 점검 횟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 사실은 1989년 유족회의 정보공개 청구로 드러났다. | |
| 113 | ||
| 114 | 조사위원회에서 사퇴한 지질학자는 2002년 사망했다. 그의 유품에서 나온 메모에는 "누수의 속도가 아니라 균열의 방향이 문제였다"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 |
| 115 | ||
| 116 | == 관련 문서 == | |
| 117 | * [[말비에르 수몰지구]] | |
| 118 | * [[랜드해협/설정/신비]] | |
| 119 | * [[UBATM]] | |
| 120 | * [[플로렌시아/역사]] |